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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 관련 지식

이집트의 역사 공부하기 전에 볼 내용

by planking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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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00년경에 이집트는 통일 국가를 이루었다. 그 후 약 2500년에 걸쳐서 26개 왕조가 세워졌다. 그중 11왕조부터 17왕조까지를 중왕국 시대라고 하는데, 이때가 바로 쿠푸 왕이 활약한 고왕국 시대가 끝난 후 테베 출신의 왕인 멘투호테프 4세가 이집트를 통일하면서 시작되었다. 중왕국 시대의 말기에는 아멘 라가 최고의 신으로 숭상되었지만, 기원전 1790년경에 중왕국 시대는 내리막길을 갔다. 이 틈을 타서 기원전 1720년 아시아의 힉소스족이 침입하였다. 전차와 말을 타고 쳐들어와서 이민족의 왕조를 세웠다. 

 

 

힉소스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집트는 힘을 키웠다. 이후에 테베의 귀족 아메스를 중심으로 힘을 합해 기원전 1567년경에 다시 이집트를 통일하였다. 이때를 바로 신왕국 시대라고 하며 그 당시 수도는 테베였다. 신왕국 시대에는 하트솁수트 여왕과 투트모세 3세 등이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자시의 이름을 이크나톤으로 바꾸고 지금까지 섬기던 아멘 라 신 대신 아톤 신을 숭배하며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다. 

 

아시아에서는 철기를 사용하는 히타이트가 이집트를 견제하여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람세스 2세가 즉위한 후에 히타이트와 이집트 사이에 전쟁은 15년간 계속되었는데, 람세스 2세가 승리하였다. 하지만 주변 신흥 국가로 일어나는 아시리아의 위협을 견제하고자 히타이트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조약으로 본다. 람세스 2세, 람세스 3세의 활약 이후에 이집트는 쇠퇴했다. 이후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등의 지배를 받았다. 

람세스 2세 석상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땅이 비옥하기 때문에 농사가 잘 되었다. 이로 인해 이 땅을 차지하려는 많은 민족들의 침입과 정복이 끊이지 않았다. 이 지방에 가장 먼저 정착한 것은 수메르인이었는데, 그 뒤를 이어 셈족이 메소포타미아를 차지하였다. 이들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여러 도시 국가를 세웠는데 이 중 하나였던 바빌론이 발전하여 바빌로니아 왕국이 되었다. 이 왕국은 기원전 1700년 메소포타이마 지방을 통일한 함무라비 왕 때 크게 번영하여 시리아 지방까지 영토를 넓혔다. 함무라비 왕은 문화 발전에도 힘을 기울였고 많은 민족들을 합치기 위해 종교의 통일을 꾀했다. 그래서 마르두크 신을 최고의 신으로 숭상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도 함무라비 왕이 죽은 후 국력이 약해져서 기원전 1500년경에 히타이트에 의해 멸망했고 아시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신바빌로니아의 시조는 칼데아 왕인 나보폴라사르였는데 그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 때 이 왕국은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방을 평정하였고 헤브라이인의 유대 왕국을 정복한 후에는 그곳 사람들을 바빌론에 포로로 잡아오기도 했다. 수도 바빌론은 매우 번성한 곳이어서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도시 주변에 성벽을 쌓았고, 북쪽에는 이슈타르문이라 불리는 큰 문을 세웠다. 

 

페르시아 제국은 아케메네스 왕조가 기원전 6세기 중반에 이란 고원에 세운 새로운 나라로서 키루스 2세 때부터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하고 있었다. 신바빌로니아의 사정을 알게 된 키루스 2세는 기원전 539년 티그리스강을 건너 손쉽게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하여 오리엔트를 통일할 큰 발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바빌론에 포로로 잡힌 유대 왕국 사람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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